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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2

양조장에서 남은 맥주 부산물로 만든 물건들

맥주에는 정말 버릴 것이 없다!
맥주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일부만이 퇴비로 활용되고, 나머지는 음식 쓰레기로 버려진다. ‘마스크’라고도 불리는 이 폐곡물을 활용하기 위해, 에너지 바나 화장품, 연료 등 소모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맥주 부산물의 쓰임은 먹는 것 이상으로 더 다양해질 수 있다. 매일 엄청난 양으로 배출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가공하여 맥주 부산물을 더하면 좀 더 단단한 물건들을 만들 수도 있다. 맥주 부산물을 재활용해 만들어진 파티션, 의자, 조명, 그리고 화장품 케이스를 소개한다.

맥주로 만든 파티션

이미지|ÅBEN 인스타그램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내추럴 머터리얼 스튜디오(Natural Material Studio)는 그 이름 그대로 자연에서 왔거나 자연으로 순환하는 재료들을 사용해 다양한 물건들을 만든다. 스튜디오를 설립한 디자이너 보니 빌룸(Bonnie Hvillum)은 숯과 조개 껍질을 활용하여 의자나 그릇 등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양조장과 레스토랑 겸 바를 함께 운영하는 맥주 업체 오벤(ÅBEN)을 위해 맥주 부산물을 재활용한 인테리어 제품을 만들었다.

오벤의 새 코펜하겐 공항 지점에서 볼 수 있는 이 맥주 빛깔의 패널은 오벤 양조장에서 나온 폐곡물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다. 내추럴 머터리얼 스튜디오는 먼저 맥주 부산물을 모아 발효되지 않도록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해가며 건조시킨다. 건조된 후에는 여러 다양한 크기의 입자들로 그라인딩 한다. 스튜디오에 따르면, 이 공정에서 최종 결과물에 새겨지는 패턴과 빛깔이 결정된다. 분말처럼 미세한 입자는 패널의 색깔을 만들고, 알갱이처럼 거친 입자는 패턴과 눈에 보이는 질감을 만든다는 것. 다음으로 이 물질을 스튜디오가 직접 개발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프로셀(procel)과 혼합한다. 프로셀은 다시 주조해 재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며 적당한 환경에서 3개월 내에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퇴비화된다고 스튜디오는 소개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종이나 패브릭처럼 재단해 사용할 수 있는 패널 형태로 가공한다.

완성된 결과물은 종이보다는 두껍지만 반대편 빛이 살짝 비쳐 보이는 반투명한 소재다. 오벤은 이 맥주 패널을 여러 가지 크기로 잘라 코펜하겐 공항에 있는 오벤 레스토랑 겸 바에 공간을 구분하는 파티션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 패널마다 마치 맥주 거품처럼 독특한 무늬가 그려져 있어, 양조장과 레스토랑, 바를 함께 운영하는 업체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맥주로 만든 조명 기구

이미지|HIGH SOCIETY STUDIO 인스타그램

마치 비틀어진 파이프 같다. 유기적이고, 유동적인 형태다. 맥주 부산물을 재활용해 몸체를 만든 세닐리아 조명은 불규칙하고 ‘불완전’한 디자인 그 자체로 지속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표현한다. 램프의 형태는 흐르는 시간이 생명체들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쓰임이 다한 것 같은 재료에서도 가치를 찾아내는 친환경 소재 개발의 의미와 그 생산 과정 자체를 반영했다. 조명을 만든 이탈리아의 디자인 스튜디오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성형한 이 램프가 기술과 수공예의 결합이라고 소개한다.

조명은 맥주 부산물을 활용한 몸체 외의 부분들도 생분해성 소재나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들만을 사용해 제작했다. 재활용 가능한 세라믹과 패브릭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였다. 하이 소사이어티 스튜디오는 맥주 부산물에 앞서 커피콩, 담배, 와인의 부산물을 활용한 전등 갓을 만든 바 있다. 스튜디오는 맥주 부산물을 활용할 때는 다른 재료들에 비해 가공 단계가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커피콩 껍질은 이미 건조된 상태라서 곧바로 분말로 그라인딩 할 수 있지만, 양조장에서 받은 홉과 보리는 깐깐한 건조 과정을 거친 후에야 그라인딩을 할 수 있어서다.

맥주로 만든 의자

이미지|mater 인스타그램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가구와 조명, 실내용 오브제 등을 디자인하는 메이터(mater)는 맥주의 부산물로 의자를 만든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이 견고한 의자의 이름은 ‘마스크 스툴(Mast Stool)’이다. 메이터와 덴마크 건축가 에바 하를루(Eva Harlou)가 함께 지속 가능한 소재와 제품을 개발하는 협력체, 어스 스튜디오(Earth Studio)가 만들었다. 소재 및 제품 개발 과정에서 덴마크기술연구소와 수년 동안 협업했다.

‘마스크 스툴’은 맥주 부산물과 플라스틱 쓰레기를 혼합한 소재로 만든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맥주 브랜드인 칼스버그 사로부터 맥주 부산물을 제공받고, 덴마크의 헬스케어 기업 노보 노르디스크(Novo Nordisk) 사로부터 다 쓰고 폐기한 플라스틱 인슐린 펜을 제공받는다. 메이터에 따르면 맥주 부산물인 폐곡물과 인슐린 펜에서 얻은 플라스틱의 비율은 대략 50 대 50이다. 재활용을 위해 새롭게 개발한 특수 건조 장치에서 폐기물들을 가열해 스툴 형태를 성형한다. 메이터는 가구의 미적인 측면이나 제품의 완성도를 타협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소재로 사용 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소개한다.

하를루는 덴마크기술연구소와 ‘마스크 스툴’의 소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신소재 조합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소개한다. 곡물뿐 아니라 커피콩과 나뭇조각 폐기물을 활용하는 제조법 역시 찾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다양한 업계와의 협업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설명이다.

맥주로 만든 화장품 케이스

이미지|ファンケル/キリンホールディングス株式会社

화장품 업계는 리필 정책이나 공병 수거 캠페인을 하는 등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에 적극적인 업계 중 하나다. 일본 코스메틱스 기업 판클(FANCL)은 일본 식음료 기업 기린 홀딩스(Kirin Holdings Co., Ltd.)와 협업하여 지속 가능한 화장품 케이스를 만들어냈다. 기린 맥주의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셀룰로오스와 헤미셀룰로오스 폐기물을 활용해, 얇은 투명 플라스틱 소재의 파운데이션 리필 케이스를 제작한 것. 이전까지 파우더와 파운데이션 등 콤팩트 제품의 리필 제품 케이스는 모두 PET 소재였다. 기린 맥주의 부산물을 활용한 리필 케이스는 지난해 말 첫 선을 보였다. 판클은 콤팩트 제품의 리필 케이스 외의 제품군으로도 지속 가능 소재 활용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수진 객원 필자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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